본문 바로가기
문학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hotniuni 2025. 3. 9.
 이 삶은 열 번 중 한 번의 리허설이 아니다. 서너 번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인생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벼운 태도와 유연한 마음, 그리고 자유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인생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느끼고 누리는 여정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성과 감성, 사유와 본능 사이의 대비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묻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 중심에 있는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본능에 충실하며 매 순간을 즐기고 사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때로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마치 고통은 한갓 꿈이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촌놈이나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올라가 연기(演技)에 가담한다는 듯이…….

 


 

 

줄거리 요약

 

 주인공은 고학력의 지적인 인물로, 책과 이론에 몰두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문서와 글로 정리하려고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삶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풍에 휩쓸린 한 조각 구름이다.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표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표어가 막연할수록 선지자는 더 위대한 것이다.

 

 

 

 어느 날 그는 그리스의 한 섬에 내려가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그곳에서 만난 조르바는 그의 상반된 인물이다. 조르바는 자유롭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과거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삶의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순간순간을 즐기며, 매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이처럼 말하며 삶을 연극처럼 여기는 관점을 제시한다.

난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어. 지금도, 내일도, 죽을 때까지!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 일을 시작하지만, 그의 자유로운 태도와 즉흥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 지내면서 점차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와 본능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삶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전파한다. 그들은 섬에서 목재 채취 사업을 하기로 하고, 수많은 사건과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조르바의 인생관은 언제나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하면서 주인공은 점점 삶을 연극처럼 즐기면서도 깊이 있게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사랑은 이 세상의 가장 강렬한 기쁨일 거예요. 아마 그럴 거예요.
하지만 저 청동 손을 보니까 그냥 벗어나고 싶군요.

 

 조르바는 결국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삶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그 안에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은 그런 조르바와 함께 하며 책과 이론을 넘어 진짜 삶을 경험하게 되고, 삶을 연극처럼 여기는 관점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의 생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2월 18일,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의 소설가, 극작가, 철학자로 유명하다. 1957년 10월 26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 신, 자유, 고통 같은 깊은 주제를 탐구했다.

 카잔차키스는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서양 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았다. 그리스의 전통적인 가치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라난 그는 점차 신학과 철학에 대한 강한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단순한 철학적 사고를 넘어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깊이 탐구하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으며, 그가 그리스 공산당과 가까웠다는 사실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은 종종 정치적 비판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내면적인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리스도라는 신적 존재의 인간적인 측면을 조명하면서 카잔차키스만의 독특한 철학적 시각을 드러낸다. 그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과 자유 의지에 대한 탐구이다. 카잔차키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의 작품은 항상 자유, 고통, 희망과 같은 주제를 다뤘다.

 


 

삶은 무대이고, 우리는 그저 배우일 뿐이다.

 

 조르바는 진지하게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는 무대를 즐기듯 인생을 살아간다. 고통조차 한 장면으로 여기며, 그 순간을 즉흥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넘긴다. 반면 주인공은 무대 바깥에서 관찰자로만 머물고, 연기의 무게를 감당하기 두려워한다. 하지만 결국 그조차도 조르바의 삶에 감화되어 연극 속으로 한 발 내딛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르바처럼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는 매 순간을 즐기고, 그 어떤 것도 얽매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본능을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는 삶을 하나의 연극처럼 여기는 관점을 제시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타인이 겪는 일과 내가 겪는 일은 천지차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일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학업, 취업, 결혼, 양육처럼 우리 삶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직접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고통스럽고 버거울지 모르지만,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그것도 결국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장면일 뿐이다.

우리는 그 장면마다 너무 얽매이거나 매몰될 필요가 없다.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연극이고, 우리는 그 연극의 주인공이다. 마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듯, 우리도 삶의 씬(scene)들 속에서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환희를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다.

 

 이 삶은 열 번 중 한 번의 리허설이 아니다. 서너 번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인생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벼운 태도와 유연한 마음, 그리고 자유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인생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느끼고 누리는 여정이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완벽할 필요도, 늘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부담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너무 무겁게 짊어지지 말고, 때때로 웃고, 때때로 울며, 그저 살아가자. 연극이 끝날 때 박수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자유를 바라보는 눈이 더 지혜로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묘한 이질감이었다. 조르바는 삶을 통째로 뜯어 먹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고뇌하지 않는다. 계획하지 않는다. 오늘의 욕망을 오늘 안에 살아내고, 사랑을 하면 온몸으로 사랑하고, 화가 나면 그대로 폭발한다. 세상에는 종종 그런 사람이 있다. 다 태워버릴 듯한 열정을 가진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생각에 빠진다.

 나는 조르바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문득문득 고개를 젓게 된다.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무시해도 되는 걸까. 그렇게까지 충동에만 의지해서 괜찮은 걸까.

 

 내가 정말 주목했던 건 조르바가 아니라, 조르바를 바라보는 '주인공'이었다. 책 속에서 그는 오래도록 머릿속에서만 사유하던 사람이다. 행동보다 사고가 먼저였고, 열정보다 이성을 택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조르바를 만나, 서서히 무너진다. 아니, 다시 세워진다. 조르바를 통해 그는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고, ‘사는 것’에 대한 사고의 방식이 전환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생각에 닿는다. 자유로움이 무조건적인 미덕은 아니라는 것. 자유로움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무게중심이 없다면 위태로울 뿐이다. 조르바의 자유는 매혹적이지만 때로는 파괴적이고, 타인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 자유를 어떻게 바라보며,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사유의 힘’이다.

 

 나는 조르바의 삶을 전부 흉내 낼 수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그 삶을 보는 시선이다. 주인공처럼 나 역시도, 누군가의 자유로운 춤을 보며 조금씩 내 몸을 풀어내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속박 속에 산다. 규범, 경쟁, 체면, 계획, 미래 불안. 그 안에서 조르바 같은 존재는 흔치 않다. 그러나 조르바를 이해하는 주인공 같은 눈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이 소설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태도다.

 사람은 흙을 밟아야 한다는 조르바의 말이 내 머리를 두드렸다. 그렇다. 머리에서만 살지 말고, 발바닥으로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또 말하고 싶다. 머리로 삶을 반추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가장 깊이 흙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조르바의 삶은 불꽃 같았다. 그러나 그 불꽃을 바라본 주인공은, 그 빛을 자기 안에 오래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